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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예술인들(박인환, 전혜린, 윤용하, 이중섭, 김관식)

1950년대 명동의 예술가들은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우며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는 강렬하게 타오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도 있었습니다.

개요

광복과 6·25전쟁을 거친 명동으로 예술가들이 모여들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명동에는 허물어진 건물들과 그을린 벽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은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명동으로 돌아옵니다. 이들은 명동의 다방과 술집에서 어울리며 시대의 아픔을 나눴습니다. 가난과 사람들의 몰이해 속에서 예술과 더불어 치열하게 살았던 만큼 세상의 끝은 이들에게 가까웠습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예술가들
시인 박인환은 명동에 향기로운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명동 엘리제로 불리는 〈세월이 가면〉은 은성주점에서 그가 즉석에서 가사를 쓰고 같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친구들에 의해 작곡되어 불렸습니다. 이 노래는 널리 유행하여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아끼던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한국인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는 시인 이상 추모의 밤 행사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여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때는 1956년 3월 20일 그의 나이 고작 30세였습니다. 사후 그의 시를 망라한 《선시집》이 1955년에 출간됐습니다.
문인 전혜린은 사람이 그리우면 명동백작 이봉구가 앉아있던 은성을 자주 찾아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재학 중이던 1955년 독일유학을 떠났고 1964년에는 성균관대학교의 조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산문집으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있으며,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등 다수의 독일 문학작품을 번역했습니다. 은성에서 술을 마신 다음날 1965년 1월 10일 31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작곡가 윤용하는 가곡 <보리밭>, <광복절 노래>, 동요 <나뭇잎 배> 등 생전에 200여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도 외롭고 힘들 때면 명동을 찾았습니다. 윤용하는 만주에서 지낼 때 조선합창단을 조직해 우리 노래를 전파했고, 일본은 그를 위험인물로 지목했습니다. 그는 6·25전쟁 기간 중에는 종군 작곡가로서 군가를 작곡했습니다. 윤용하는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다 1965년 43세에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장례미사는 명동성당에서 치러졌습니다. 그의 곡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있어 지금도 많이 애창되고 있습니다.
화가 이중섭은 〈싸우는 소〉, 〈흰 소〉 등으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일본 유학생활 중 만난 아내 마사코와 식을 올려 부부의 연을 맺고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6·25전쟁 중 피난과 가난에 시달려 아내와 자식은 일본으로 돌아가고 혼자 지냅니다. 럭키스트라이크 담뱃갑 은지화에다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었으나 돈도 벌지 못하고 가족을 만나러 가지도 못합니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나이 40세에 유명을 달리합니다. 그는 명동에서 술을 마시다가 지인에게 신세질 때면 은지화에 그림을 그려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시인 김관식은 스스로를 ‘대한민국 김관식’이라 칭할 정도로 기인이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문단 선배라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대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여 후에 시인이 되었을 때 동양인의 서정세계를 동양적인 감성으로 노래하는 특이한 시풍을 완성했습니다. 1970년 36세의 나이로 간염과 위궤양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대표작으로는 시선집 《다시 광야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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